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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개의 본성들 연구 10 영적 본성과 인간의 본성은 분리되고 별개의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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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오해 ––땅의 본성(인간의 본성)과 하늘의 본성(영적 본성) ––땅의 영광과 하늘의 영광 ––영적 존재에 관한 성서의 증언 ––Á×À½À» ¸éÇÒ ¼ö ¾ø´Â 성질과 불멸 ––Á×À½À»
¸éÇÒ ¼ö ¾ø´Â 존재가 ––총애를 부여하시는데 있어서의 공정 ––상상된 원칙이 검토되었음 ––완전한 상태에 다양성 ––하나님의 주권 ––인간에게
만족한 분배를 ––그리스도의 몸을 택하심 ––어떻게 그들의 본성의 변화가 완수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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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오해 인류 대부분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그들의 이전 상태인 에덴에서 잃은 인간의 완벽으로 회복하게 되어있다는 것과(겔 16:55) 이 일반적인 계획의 예외로서 기독교의 교회는 인간의 본성에서 영적 본성으로 변화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기독교인들이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은 영적 본성에 이르는 사람들 외에는 아무도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상상한다. 그러나 성서는 땅의 모든 가족에게 생명, 축복, 회복의 약속을 약속하면서, 다만 복음시대에 선택된 교회에게 영적 본성으로 변화를 제공하고, 약속한다. 어느 다른 사람들에게 그러한 희망을 확증하는 구절은 단 하나도 성서에서 찾아볼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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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인류 대부분이 모든 타락, 약점, 고통, 불행, 죄에서 유래된 죽음에서 구원되고, 타락하기 전에 맛보던 인간 완벽의 상태로 회복된다면, 그 사람들은 복음시대에 부여되는 특별한 "위로 부르심"을 받고, "신의 본성에 참여하는 자" (빌 3:14, 벧후 1:4)가 되는 자들과 같은 정도로 실제로 완전히 그 타락에서 구원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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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완벽한 인간을
성립하는가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함과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성질"과
"불멸" 이란
용어들의 오해와
공정의 그릇된 관념이
합해서 이 오해에
도달하고, 그렇지
않으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많은
성서들을 불가사의하게
했다.
성서의 단 한 구절로도 증명되어있지 않지만, 공통한 견해는 완벽한 인간은 지상에 있어본 적이 없었다는 것과 지상 사람에게 보이는 모두는 오직 부분적으로 진화된 인간이라는 것과 완벽에 달하기 위해서는 그가 영적 존재가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이 견해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다루는"(딛후 2:15)데서 유래되는 그 조화와 미를 구성하는 대신에 성서의 혼동을 유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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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본성 (인간의 본성) 과 하늘의 본성(영적 본성) 성서는 두 사람, 단지 두 완벽한 사람(아담과 예수)이 있었다고 가르친다.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 1:26) 즉 이성, 기억력, 판단, 의지력, 등의 유사한 정신력과 공정, 자비심, 사랑, 등의 도덕상의 본질로 창조되었다."땅에서 났으며 흙으로 만들어진 아담은 (고전 15:47) 정도와 한계와 범위에 있어서 널리 다르지만, 같은 종류의 본질을 갖춘 영적인 존재의 땅에 속한 형상이었다. 하나님께서 타락된 인간에게까지 이제 오너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라고 말씀하실 수 있을 정도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다. (사 1: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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õ»çµéº¸´Ù Á¶±Ý ³·Àº... |
여호와께서
모든 만물의
주권자이신 것과 같이, 인간은
땅의 모든 것의
주권자로 창조되었다. 우리가
우리의 모양을 따라
사람을 만들고, 그로
가축과 물고기와 새, 등
모든 것을 복종시키게
하자 하셨다. (창
1:26)
모세는 우리에게 이야기(창 1:31) 하기를, 하나님께서 그가 만드신- 만드시기를 오직 시작한 것이 아니라, 완성한- 인간을 인정하시고, 하나님께서 그의 피조물을 "아주 좋다" " 즉 완벽하다고 생각하셨다." 그의 지적인 피조물에 있어서 완벽에 못 미치는 것은 아무것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주 좋은 것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창조된 대로, 인간의 완벽은 시편 8:5-8에 표현되어있다. "그를 천사들보다 조금 ³·°Ô 만드시고 그에게 영광과 영화로 면류관을 씌우셨으니,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들을 지배하게 하시어 모든 것을 그의 발아래 두셨습니다. 작은 가축과 소, 그 모두, 벌판의 짐승들, 하늘의 새들과 바다의 물고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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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ðµç À°Ã¼°¡ °°Àº À°Ã¼°¡ ¾Æ´Õ´Ï´Ù. »ç¶÷ÀÇ À°Ã¼°¡ ÀÖ°í, ¶Ç °¡ÃàÀÇ À°Ã¼°¡ ÀÖÀ¸¸ç, »õÀÇ À°Ã¼°¡ ÀÖ°í, ¹°°í±âÀÇ À°Ã¼°¡ ÀÖ½À´Ï´Ù.¡± (°íÀü 15: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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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진화론에 순응케
하려는 어떤 사람이
제안하기를, 히브리서
2:7에
있는 "조금"이라는
말은 인간을 잠깐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라고
이해할 수 있다며, 천사보다
정도가 낮게 라는
뜻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해석을 위한 권위도 없고, 판단력도 없다. 이것은 시편 8:5에서 인용된 것인데 헤브라이어와 그리스어 원본과의 정밀한 비교는 그 중요성에 관해서 의심할 수가 없다. 분명히 표현된 그 관념은 천사보다 정도에 있어서 낮다고 되어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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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편에서 다윗은 본래
상태에 있어서 사람(아담)을
언급하며,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을 따른
사람과 땅의 왕을
두시려는 그의 최초의
계획을 단념하지
않으셨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그를
기억하시고
구원하시며, 다시
같은 본래 상태로
회복하실 것이라는
것을 예언적으로
암시한다.
사도 바울은(히 2:6) 같은 사실 곧 하나님의 최초의 목적을 단념하시지 않았다는 것과 원래 당당하고 완벽하며, 땅의 왕인 인간을 염두에 두시고, 돌보시고, 회복하시게 되어있다는 사실에 주의를 끈다. 그 다음에 그는 부언하기를, (히 2:8,9) 우리는 이 약속하신 회복을 아직 보지 못하나, 하나님께서 그것의 성취를 위하여 취하시고 있는 첫 단계를 본다고 한다. 우리는 예수께서 완벽한 성년의 영광과 영예로 면류관을 쓰신 것을 본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적합한 속죄물이나 대리로서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고, 타락된 모두에게 인간의 회복을 위한 길을 이렇게 준비하실 수 있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다. 가장 면밀한 번역자들 중의 하나인 롸더햄(Rotherham)은 이 절(히 2:6,7)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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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Á¶±Ý ³·´Ù´Â Á¶±Ý ºÒ¿ÏÀüÇÏ´Ù´Â ¶æÀÌ ¾Æ´Ï´Ù. |
땅의 영광과 하늘의 영광 정도에 있어서 조금 낮다 함이 조금 덜 완전함을 의미한다고 추단해서도 안 된다. 한 피조물이 완전하지만, 그러면서도 다른 완전한 피조물보다 낮은 ´Ü°èÀÇ 존재에 있을 수 있다. 그래서 한 마리의 완전한 말은 한 완벽한 인간보다 낮을 것이다. 생명이 있건 없건 여러 가지 본성들이 있다. 설명하기 위하여 우리는 다음의 도표를 준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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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º»¼º¿¡´Â º°°³ÀÇ Â÷À̵éÀÌ ÀÖ´Ù. |
기재된
각 광물들이 순수할
수 있지만, 그러나
금이 최고로 등급이
매겨져 있다. 만일
각 서열의 식물들이
완전하게 된다해도, 그것들은
본성과 등급에 있어서
여전히 다를 것이다.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만일
각 종들이 완전하게
된다해도 다양성이
여전히 있을 것이다. 본성을
완전하게 하는 것은
본성을 변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
영적 존재의 등급도 역시 완전해도 본질이나 종류에 있어서 서로 보다 높고 낮은 관련이 있다. 신의 본성은 모든 영적 본성 중에서 가장 높고 우수하다. 신이 천사의 본성보다 우수하듯이, 그리스도는 부활 때 완전한 천사들 보다 "그만큼 뛰어나게" 되었다. (히 1: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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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도표에 지정된 계급들은 분리되고 별개의 것이지만, 아직도 그것들 사이의 비교가 성립될 수 있다는 것을 면밀히 주의 해 봅시다. 광물계의 가장 높은 등급은 식물계의 가장 낮은 등급보다 열등하거나 정도가 낮다. 왜냐하면 식물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식물계의 최고의 등급은 동물계 중에서 최하의 등급보다 정도가 낮다. 왜냐하면 생명 있는 동물은 동물의 가장 최하의 형태에서까지도 생존을 의식할 만큼 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동물계나 땅의 존재들 중에서 최고이지만 "천사보다 정도가 낮다". 왜냐하면 천사는 영적 또는 하늘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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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죄로 타락된 지금
보고 있는 인간과
하나님께서 그의
형상대로 만드신
완벽한 인간사이 에는
놀라운 대조가 있다. 죄가
그의 성질뿐이 아니라, 용모도
점차 변화시켰다. 번식된
세대들은 무지, 방탕, 일반적
악행으로 인류를
더럽히고 망쳐 놓았기
때문에 인류 대부분
속의 하나님의 형상이
거의 지워졌다. 도덕적, 지적인
질이 작아졌다. 그리고
과도하게 발전된
동물적인 본능은 더
높은 본능 (도덕적, 지적
자질)
과
이젠 균형이
맞추어지지 않는다. 인간은 그만한 의학의 조력이 있는데도, 그의 평균수명이 지금은 약 30 년일 정도로 체력을 잃었다. 이에 반하여, 최초에 인간은 같은 처벌 아래 930 년을 생존하였다. 그러나 죄와 죄의 처벌 때문에 이렇게 모독되고 타락되었으며, 죽음이 그의 안에 작용하고 있지만,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로 그 기간에 인간은 마음과 신체를 그의 최초의 완벽과 영광, 영예와 주권으로 회복하게 되어있다. 그리스도에 의해, 그리고 그를 통해서, 회복되는 것들은 아담의 범죄를 통해서 잃은 것들이다.(롬 5:18,19) 인간은 하늘의 낙원이 아니라, 지상의 낙원을 잃었다. 죽음의 처벌아래 그는 영적 생존이 아니라, 인간의 생존을 잃었다. 그리고 "잃은 것을 찾고 구원하려고 왔다"라고 선언하신 그의 구세주가 희생을 치르고 잃은 모든 것을 획득하셨다. (눅 19: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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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Ïº®ÇÑ Àΰ£Àº ¿µÀû Á¸Àç°¡ ¾Æ´Ï´Ù. |
영적 존재에 관한 성서의 증언 위에 더하여 완벽한 인간은 영적 존재가 아니라는 증명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우리주님은 사람이 되기 위하여 영광을 떠나기 전에 "하나님의 형상" 영적 형상, 영적 존재- 으로 있었다고 우리에게 알린다. 그러나 인류를 위하여 속죄물이 되기 위하여 그가 죽음으로서 죄인의 대리인이 되게 된, 그 죄인과 같은 본성을 소유한 사람이 되어야 했으므로, 그의 본성이 변화되는 것이 필연적이었다.그리고 바울은 우리에게 말하기를, 우리 주님은 그 자신의 단계 보다 한 단계 낮은 천사의 본성을 취하지 않고, 두 단계를 내려와서 인간의 본성을 취했다고 했다.- 그가 사람이 되었다. 그는 "육체가 되었다." (히 2:16, 빌 2:7,8, 요 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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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다음의 세 가지를 가르친다는
것을 유의하기 바란다:
(1) 천사의 본성은 영적 존재의 유일한 계급이 아니라는 것뿐이 아니라, 우리 주님이 사람이 되시기 전의 그의 본성보다 낮다. (2) 그가 사람이 되시기 전의 우리 주님의 위치는 지금만큼 높지 않으셨다. 이것은 자진해서 인간의 속죄물이 되는 그의 순종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탁월한 위치로 높이셨음"이기 때문이다. (빌 2:8,9) 그는 지금 영적 존재 중에서 최고 계급의 본성을 소유한다. 곧 신의(여호와의) 본성의 참여자이시다. (벧후 1:4) 그러나 신과 천사와 인간의 본성은 분리되고 별개의 것이라는 증명을 우리는 이렇게 발견 할 뿐이 아니라, 완벽한 사람이 된다고 해서 천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천사의 본성이 완전하다고 해서 천사가 신이나 여호와와 동등함을 함축하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증명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천사의 본성을 취하지 않고 다른 본성 곧 인간의 본성을, 그러나 우리가 지금 소유하고 있는 완벽치 않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 완벽한 인간의 본성을 취하셨기 때문이다. 지금의 인간 같은 타락되고 거의 죽은 존재가 아니라, 그는 완벽의 활기로 가득 찬 한 사람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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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Ïº®ÇÑ »ç¶÷À̽Š¿¹¼ö´ÔÀº ¿ÏÀüÇÑ À²¹ýÀ» ÁöŰ½Ç ¼ö ÀÖ¾ú´Ù.
¿ÀÁ÷ ¿Ïº®ÇÑ Àΰ£¸¸ÀÌ ¿Ïº®ÇÑ »ç¶÷À» À§ÇÏ¿© ´ëÀÀÇÑ ´ë°¡¸¦ ÁÙ ¼ö ÀÖ¾ú´Ù. |
되풀이해서, 예수님은
완벽한 사람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한
완벽한 사람의 능력의
완전한 표준인 완전한
법을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완벽한
사람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으면 완벽한 사람인
아담이 상실한 생명을
위해서 속죄물(대응한
대가
- 딛전
2:6)로
줄 수 없었을 것이다.
" 죽음이 한 사람을 통하여 있게 되었으므로, 죽은 사람의 부활도 한 사람을 통하여 있게 되었습니다." (고전 15:21) 만일 그가 조금이라도 완벽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그가 정죄아래 있었다는 것과 그러므로 그가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희생 제물이 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과 그가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도 없었을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였을 것이다. 한 완벽한 사람이 시험을 받고, 실패하고, 그래서 정죄되었다. 그래서 한 완벽한 사람만이 구세주로서 대응한 대가를 줄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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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공명정대하게 그 질문을 또 다른 형식으로 우리 앞에 당면하고 있다. 즉 성서가 그렇게 나타내듯이, 만일 육체로 계신 예수님이 한 완벽한 사람이었으면, 한 완벽한 사람은 천사가 아니고, 천사보다 정도가 낮은 한 인간인 육체의 존재라는 것을 그것이 증명하지 않는가? 논리적인 결론은 틀림이 없다. 이 위에 시편의 작자의 영감을 받은 말씀(시 8:5-8)과 히브리서 2:7-9에 그것에 대해 바울의 참고가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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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¹¼ö´ÔÀº µÎ º»¼ºÀÇ °áÇÕÀÌ ¾Æ´Ï¾ú´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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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¹¼ö´ÔÀº µÎ ¹ø º»¼ºÀÇ º¯È¸¦ üÇèÇϼ̴Ù. |
예수님은
인간과 영적인 두
본성의 결합도
아니었다. 두
본성의 융합은 이도
저도 아니지만 신의
제도에 불쾌한 결함이
있는 잡종을 낳는다. 예수님이
육체로 계셨을 때에
그는 한 완벽한 인간
존재였다. 그
이전에는 한 완전한
영적 존재였다.
그리고 그가 부활한 이래로는 그는 가장 높은 신의 계급의 한 완전한 영적 존재이다. 예수님은 신의 본성 상속의 보증을 30 살에 침례(마 3:16,17) 안에서 상징된 것 같이, 죽기까지의 헌신을 할 때까지 받지 않았다. 30살은 율법에 따라서 성년남자, 그러므로 한 성년으로서 스스로 헌신하기 옳은 때이다. 그가 신의 본성의 보증조차 받을 수 있기 전에, 인간의 본성을 죽기까지 헌신해야 했다. 우리 주님은 헌신을 실제로 실행하고, 죽기까지 인간의 본성을 실제로 희생하실 때까지, 신의 본성의 완전한 참여자가 되지 않았다. 한 성년이 된 후, 그는 죽기까지 순종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신의 본성으로 높이셨다.(빌 2:8,9) 만일 이 성서가 진실이라면 인간의 본성이 실제로 희생될 때까지 곧 죽을 때까지 그는 신의 본성으로 높여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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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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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¹¼ö´ÔÀº ¾Æ´ãÀÌ ÀÒÀº °Í¿¡ ´ëµîÇÑ °ªÀ» Á̴ּÙ.
¡°ÀÌ¿Í °°Àº ´ëÁ¦»çÀå, °ð Ãæ¼º½º·´°í, ¾ÇÀǰ¡ ¾ø°í, ´õ·´ÇôÁöÁö ¾Ê°í, ÁËÀεé°ú ±¸º°µÇ°í, ÇÏ´Ãµé º¸´Ù ´õ ³ô°Ô µÇ½Å ºÐÀº ¿ì¸®¿¡°Ô ÀûÇÕÇÏ¿´½À´Ï´Ù.¡± (È÷ 7:26) |
따라서 우리는 이것을 깨닫는다. 곧 예수님 안에는 본성의 혼합이 없었지만, 그는 두 번 본성의 변화를 체험했다. 첫째, 영적 본성에서 인간의 본성으로, 그 다음에 인간의 본성에서 영적 본성의 제일 높은 질서로, 즉 신으로 변화되었다. 그리고 각 경우에 있어서 다른 본성을 취하기 위하여 한 본성을 포기해야 했다. 세상의 구원을 위해서 희생될 때까지, 세상 앞에 흠이 없는 상태를 유지한 완벽한 인간성의 이 당당한 예에서 우리는 우리 인류가 아담 안에서 타락되기 전의 완벽과 회복하게 되는 완벽을 본다. 사람의 속죄물이 되는데 있어서 우리 주 예수는 사람이 잃은 것을 위해 동등한 것을 주었다. 그러므로 모든 인류는 그리스도의 믿음과 필요조건에 순종을 통하여 영적 본성이 아니라, "잃었든" 완벽한 인간의 본성을 다시 받을 수 있다.완벽한 인간존재의 완전한 기능과 능력은 언제까지나 발휘될 수 있고, 또 새롭고 다채로운 흥미의 대상들에 발휘될 수 있으며, 지식과 기술은 굉장히 증대될 수 있다. 그러나 지식이나 능력의 그러한 증대는 본성의 변화를 초래하거나 본성을 보다 더 완벽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오직 완벽한 인간의 능력을 확장하고 발전하는 것 뿐일 것이다. 지식과 기술의 증대는 의심할 바 없이 언제까지나 인간의 축복된 특권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사람일 것이며, 오직 이미 소유한 인간 본성의 능력을 더 충분하게 이용하는 것을 배우는데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의 광범한 한계를 넘어서는 그는 바랄 수 없으며, 그의 욕구가 그의 능력의 범위에 제한되었으므로 그가 진보하기를 원하지도 않을 것이다. 예수님이 한 사람으로서 인류의 대부분이 회복될 그 완벽한 인간의 본성의 한 예증이라고 할지라도, 그러나 부활하신 이래로 그는 극복하는 교회가 부활 때 그와 같이 함께 할 영광스러운 신의 본성의 예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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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ÇÏ´ÃÀÇ ¸öµéÀÌ ÀÖÀ¸¸ç ¶¥ÀÇ ¸öµéÀÌ ÀÖ½À´Ï´Ù. ±×·¯³ª ÇÏ´ÃÀÇ ¸öµéÀÇ ¿µ±¤ÀÌ ´Ù¸£°í, ¶¥ÀÇ ¸öµéÀÇ ¿µ±¤ÀÌ ´Ù¸¨´Ï´Ù.¡± (°íÀü 15:40) ¡¡ |
이
현재시대가 본성의
변화를 제안 받은 이
계급의 발전에 주로
바쳐있고, 사도들의
서한이 이 "적은
무리"의
교훈에 바쳐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계획이 이 선택된
일단의 완성으로
끝난다고 추리해서는
안 된다.
다른 한편으로, 반대극단으로 가서, 이 계급의 사람들 "적은 무리"에게 제안된 신의 본성과 영적 몸 (고전 15:44)을 받게 된다는 특별한 약속이 모든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해서도 안 된다. 모든 인류에게 제안된 다른 귀중한 약속들 위에 "귀중하고도 매우 웅대한 약속들"을 이들에게 준 것이다. (벧후 1:4)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면 성서는 "적은 무리"속에 신의 본성의 완벽과 회복된 세상 사람들 속에 인간의 본성의 완벽은 두 분리된 것들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관찰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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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µÀû Á¸Àç¶õ ¹«¾ùÀ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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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존재가 무엇인가? 무슨
능력을 그들은
소유하고 있는가? 무슨
율법으로 그들은
지배되는가? 하는
것을 지금 좀더
자세히 알아봅시다. 많은
사람들은 영적 존재의
본성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은
단순히 신화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그래서
이 주제에 많은
미신이 우세하고 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러한 관념을 가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는 인간이 보다 높은 영적 존재의 성질을 깨달을 수 없음을 암시 하지만(고전 2:14) 마치 신화나 미신적이라는 어느 관념을 경계하려는 것처럼 그는 명백히 진술하기를, 육적인 (인간의) 몸뿐이 아니라, 영적 몸도 있고, 땅의 몸뿐이 아니라, 하늘의 몸도 있으며, 하늘의 몸의 영광뿐이 아니라, 땅의 몸의 영광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본바와 같이, 땅(인간)의 영광을 아담의 죄 때문에 잃긴 했으나, 주 예수님과 그의 신부(그리스도, 머리와 몸)가 천년통치 기간에 인류를 위해 회복하게 되어있다. 하늘의 몸의 영광은 하나님 말씀을 통하여 성령으로 믿음의 눈에 드러난 정도 외에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이 영광들은 분리되고 별개의 것이다. (고전 15:38-49) 우리는 육적인 흙의, 땅의 몸이 무엇인가를 어느 정도까지는 알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육적인 몸의 완전함의 영광은 대강만을 추단 할 수는 있지만, 우리가 지금 그런 것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살과 피와 뼈이다.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요 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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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고
두 별개의 종류의
몸들이 있기 때문에
영적 몸이 무엇이든, 그것이
살과 피와 뼈로
구성되어있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것은
천상의, 하늘의, 영적
몸일 것이다 ("영에서
난 것은 영이니"). 그러나
영적 몸이 무엇인지
우리는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으나
.....우리가
그와 같이 될 것이다"
(요
3:6,
요일
3:2)
라고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을 제외하고는 영적 존재이건 인간의 존재이건, 어떤 존재가 한 본성에서 다른 본성으로 변화된 적이 있다는 기록이 우리에게는 없다. 이것은 예외적인 목적을 위한 예외적인 경우였다.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창조하셨을 때, 의심할 바 없이 그들이 영구히 천사인 채로 있을 것을 의도 하셨다. 사람도 그렇다. 각기 그 자신의 ´Ü°è¿¡¼ 완전하다. 적어도 성서는 아무 다른 목적에 대한 암시를 주지 않고 있다. 무생물 창조에 만족한, 거의 끊임없는 다양성이 있는 것같이, 생명 있는 지적인 창조에도 완벽에 있어서 같은 다양성이 가능하다. 완전한 상태에 있는 모든 피조물은 영광스럽다. 그러나 바울이 말하듯이, 하늘(천상)의 몸들의 영광은 한 가지 종류의 영광이고, 땅(흙)의 몸들의 영광은 또 다른 종류이며, 다른 영광이다. (고전 15: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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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후에 우리 주님과 영적 존재들인 천사들에 관해 기록된 사실들을 조사함으로서, 이렇게 영적인 것을 영적인 말과 결합시키면서(고전 2:13) 영적 존재들에 관해서 우리는 얼마간의 일반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첫째로, 천사들은 나타날 수 있으며, 종종 나타난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둘러 진을 치고"들은 모두 공적 봉사를 위한 영들로서, "구원을 상속받을 자들을 섬기도록 보냄을 받은 자들이 아닙니까."(시 34:7, 히 1:14)그들이 눈에 보이게 섬겼는가, 아니면 눈에 보이지 않게 섬겼는가? 의심할 바 없이 후자이다. "앗스르 (Assyrians) 의 한 군대가 엘리사를 에워쌌다. 그의 종복이 두려워했는데 엘리사가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젊은 종복의 눈을 열어 주시므로, 그가 보니, 산간 지방에 불말(불같이)과 불 병거들이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러싸고 있었다. 또 한편, 발람에게는 천사가 보이지 않았는데, 나귀는 그의 눈이 열려 그를 보았다." (왕하 6:14-17, 민 22:2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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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로, 천사들은 인간의 몸으로 짐짓 가장할 수 있으며, 인간으로서 나타날 수 있다. 주님과 두 천사들이 그렇게 아브라함에게 나타났다. 아브라함이 그들을 위하여 저녁을 준비하여, 그들은 저녁을 먹었다. 처음에 아브라함은 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이 막 가려고 할 때까지 그들 중에 하나는 주님이시고, 다른 둘은 천사라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 후, 그 두 천사들은 소돔 (Sodom)에 내려와 롯 (Lot)을 구하였다.(창 18:1,2) 한 천사가 기드온(Gideon)에게 한 인간으로 나타났으나, 그 후에야 천사 자신을 알게 했다. 한 천사가 삼손(Samson)의 부모에게 나타났는데 그들은 그가 제단의 화염가운데 하늘로 올라갈 때까지 사람으로 생각했다. (삿 6:11-22, 13:2-21) 셋째로, 영적 존재는 그들의 정상의 상태에서는 영광스러우며, 종종 그들을 영광스럽고 광채 난다고 칭한다. 무덤의 문에서 돌을 굴려 낸 천사의 겉모양은 "번개 와 같았다." (마 28:2,3)다니엘은 한 영적 몸의 섬광에 마주쳤는데, 그가 묘사하기를, 그의 눈은 타오르는 횃불 같고, 얼굴은 번갯빛 같고, 팔과 발은 빛난 구리와 같고, 그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 같았다고 했다. 그의 앞에 다니엘은 한 죽은 사람 같이 엎드러졌다.(단 10:6,10,15,17) 타서스(Tarsus)에 사는 사울도 대 낮에 햇빛 광채이상 빛나는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몸의 비슷한 섬광에 마주쳤다. 사울은 그의 시력을 잃고 땅에 쓰러졌다. (행 9:3,4) 여기까지는 우리가 다음 사실을 발견했다: 영적 존재는 확실히 영광스럽다. 그러나 영적 존재들을 보도록 사람의 눈을 열어주거나, 그들이 인간으로 육체의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 외에는, 인간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결론은 우리가 이 나타나는 것에 대한 특별한 상술을 검토할 때 더한층 확증된다. 주님이 사울에게 홀로 보이고, 함께 가던 사람들은 음성의 소리는 들었으나 아무도 보지 못하였다. (행 9:7) 다니엘과 함께 있던 사람들은 그가 묘사하는 그 영광스러운 존재를 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큰 떨림이 자신들에게 내리자 달아나 숨어버렸다. 다시 이 영광스러운 존재가 선언하기를, "페르시아(Persia) 왕국 영역의 군왕이 이십일 일 동안 나를 저항하였다." (단 10:13)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 다니엘이 페르시아의 군왕이 이십일 일 동안 저항한 이 사람 앞에 죽은 사람 같이 엎드러졌는가? 어떻게 이럴까? 확실히 그는 군왕에게 영광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아니다. 그가 보이지 않게 그와 더불어 임재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한 사람으로 나타났다. 우리의 주님은 부활 후에 영적 존재다. 따라서 그는 우리가 본 천사(영적 존재) 가운데에서 예증된 같은 능력을 역시 소유하고 있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다음 장에서 더 충분히 알게되는 바와 같이, 그러한 것이 실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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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성서는 영적 본성과
인간의 본성이
분리되고 별개의
것으로 본다는 것과
한 본성에서 다른
본성으로 진화할
것이라는 증거를 주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발견한다. 그와
반대로 성서는 오직
극소수만이 인간에서
그들의 머리이신
예수님이 이미
높여지신 신의
본성으로 변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이 훌륭하고 특별한 면모는 모든 것을 회복하는 위대한 미래의 일을 위한 하나님의 대행자로서 이들을 준비해주는 그 훌륭하고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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Á×À½À» ¸éÇÒ ¼ö ¾øÀ½°ú 불멸 인간 존재와 영적 존재, 그리고 땅에 속한 약속과 하늘에 속한 약속에 관한 성경말씀의 비교에서 우리가 배운 것과 엄밀히 조화되는 부제(Á×À½À» ¸éÇÒ ¼ö ¾øÀ½°ú ºÒ¸ê)의 참된 의미를 우리는 발견할 것이다. 이 부제 낱말들에 보통 매우 불확실한 의미를 주고 있으며, 그 의미들의 그릇된 관념은 일반적으로, 그리고 성서를 사용하는데 이 부제 낱말들에 관계되는 주제에 대하여 오류의 견해를 일으킨다. ¡°Á×À½À» ¸éÇÒ ¼ö ¾øÀ½¡±À̶õ 낱말은 죽는 경향이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죽어있는 상태가 아니라, 죽을 가능성이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불멸"이란 낱말은 죽는 경향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단지 죽음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죽음이 불가능한 상태를 의미한다. Á×À½À» ¸éÇÒ ¼ö ¾øÀ½ÀÇ 일반의 틀린 관념은 죽음이 불가피한 상태라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불멸의 의미의 일반적 관념은 거의 더 정확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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ºÒ¸êÀº Á×À½ÀÌ ºÒ°¡´ÉÇÏ´Ù´Â °ÍÀ» ÀǹÌÇÑ´Ù. Á×À½À» ¸éÇÒ ¼ö ¾øÀ½°ú ºÒ¸ê¿¡ °üÇØ¼ È¥µ¿ÀÌ ÀÖ´Ù. |
불멸은
멸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 말들의
구성만으로도 그
말들의 참된 정의를
가리킨다. 아담이
범죄 전에 Á×À½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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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는지 불멸 상태에
있었는지를 정해
보려고 할 때, 많은
사람들이 혼동 된
것은 Á×À½À»
¸éÇÒ
¼ö ¾øÀ½À̶õ이란 말의
그릇된 관념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추론하기를, 불멸의 존재는 죽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만일 아담이 불멸의 존재였다면 하나님께서 네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창 2:17)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논리적인 결론이다. 이와 반대로, 그들은 말하기를, 만일 그가 Á×À½À» ¸éÇÒ ¼ö ¾ø´Â Á¸Àç¿´´Ù¸é, 아무리 해도 그가 죽음을 회피할 수 없었으므로, "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고 하는 말씀이 어떻게 위협이나 처벌로 될 수 있을까" 하며 그들의 틀린 정의에 따라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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Á×À½À» ¸éÄ¡ ¸øÇÒ »ý¸íÀº ¿ÜºÎÀÇ ¿ä¼Ò·Î À¯ÁöµÈ´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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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Á×À½À»
¸éÇÒ ¼ö ¾øÀ½À̶õ 말에 준
그릇된 의미 속에
있다는 것이 감지될
것이다. 정확한
정의를 적용하면 모두가
명백하다. 아담은
멸하게 될 수 있는
존재였다. 즉
그는 죽음이 가능한
상태에 있었다. 그는
가득 차고 완전한
한도로 생명을 가졌으나, 선천적인
생명을 가지지 않았다.
그의 생명은 금단의 열매를 제외하고는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로"유지된 생명이었다.(창 2:16) 그리고 그가 계속 창조자께 순종하며 그와 조화되어 있는 한, 그의 생명은 확보되었다. 생명을 지탱하는 요소들(나무 열매들)은 부인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보인 것은 아담이 생명을 가졌고, 죽음을 완전히 피할 수 있었으나, 그는 아직도 죽음이 가능한 상태에 있었다. 그는 Á×À½À» ¸éÇÒ ¼ö ¾ø´Â Á¸Àç¿´´Ù´Â °ÍÀÌ´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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Á×À½À» ¸éÇÒ ¼ö ¾ø´Â Á¸Àç°¡ 영생을 가질 수 있을까? 그렇다면 질문이 있게 되는데, 만일 아담이 Á×À½À» ¸éÇÒ ¼ö ¾ø´Â Á¸Àç·Î 시험에 있었다면 그는 불멸을 얻기 위해 시험에 있었는가? 일반적인 대답은 "네" 일 것이다. 우리는 "아니요" 라고 대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