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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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넓은 길은 멸망으로 –– 좁은 길은 생명으로 –– 생명이란 무엇인가? –– 신의 본성 –– 신의 본성과 인간의 본성과의 관계 –– 좁은 길의 최후에는 보답 –– 위로 부르심은 복음시대에 한정됐음 –– 좁은 길의 어려움과 위험들 –– 거룩한 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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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성서들에서 이렇게 세 가지 길("넓은 길")에 우리의 주의를 이끈다. 넓은 길은 멸망으로 이 길은 타락한 인류에게 가장 쉽기 때문에 넓은 길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6천년 전에 멸망되도록 정죄된 죄인으로서 아담은 (그리고 인류는 그 안에서 상징되었음) 이 길을 걷기 시작하여, 9백 30 년 후에 그 길의 끝(멸망)에 달했다. 해와 세기가 지나감에 따라 타락의 길은 더욱 더욱 평탄하게 닳아 해어져서, 인류는 더욱 재빨리 멸망으로 달려갔다. 그 길은 죄와 더불어 나날이 더 윤이 나고, ´õ¿í ¹Ì²ô·´°í ¹Ì²ö°Å·ÁÁö°í ÀÖ´Ù. 그리고 그 길이 더욱 미끄러워지고 있을 뿐이 아니라, 인류는 나날이 저항력을 잃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인간의 평균수명은 약 35 세다. 지금 인간은 첫 사람보다 9 백년이나 빠르게 그 길의 끝(멸망)에 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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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천년
동안 인류는 넓은
타락의 길을 한결같이
쫓아갔다. 비교적
겨우 소수만이 그들의
행로를 바꾸고, 걸음을
다시 되돌려
회고하려고 노력한다. 어떤
사람의 이렇게 하려는
노력은 칭찬할만하고
유익한 결과가 없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모든
걸음을 다시 하거나, 본래의
완벽에 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6 천년 동안 죄와 죽음이 인류를 잔인하게 지배하고, 그들을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길로 몰았다. 그리고 복음시대 까지 멸망을 모면할 수 있는 길이 드러나지 않았다. 이전 시대에는 희망의 빛이 전형과 그림자 안에 희미하게 보여, 비록 한 소수만이 그 빛을 기쁘게 환호하여 맞고 좇아 행동했다 하더라도, 생명과 불멸은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시고, 사도들이 구속과 죄의 용서와 더불어 일어나는 멸망에서 부활의 좋은 소식을 선언한 때까지 드러나지 않았다. (딛후 1:10) 예수님과 사도들의 가르침은 생명 -구세주의 공로와 희생에 근거한 모든 인류를 위한 생명으로 회복 -을 드러내며, 이것이 많은 구약성경 전형의 중요성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은 또한 복음교회에게 위로 부르심의 상인 불멸을 드러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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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길에서
달아나는 길이 좋은
소식을 통해서
밝혀졌다 하더라도, 죄로
타락되고 대적(마귀)이
인간의 판단력을 잃게
하였기 때문에 인류의
대다수는 좋은 소식에
유념하지 않았다.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이 생존하게되는 상태로 회복된다는 생명의 약속을 지금 감사하게 받아드리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길이 열려져 있고, 이 길을 따라서 헌신한 신자들이 가면 그들은 인간적인 본성 이상으로 더 높은 본성 (영적 본성)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해 주었다. 이 새로운 길을 우리 주님께서 왕 겸 제사장이라고 부르신" 우리를 위해서 열어 주신 것입니다" (히 1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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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길은 생명으로" 우리 주님께서는 이 길의 좁음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길에 남아 있기를 차라리 좋아한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좁아서 그것을 찾아내는 사람들이 적습니다. " (마 7:14)생명이란 무엇인가? 이 좁은 길과 그것의 위험과 어려움을 숙고하기 전에, 그것이 인도하는 끝인 생명을 유의해 봅시다. 이미 본바와 같이, 생명은 인간의 ´Ü°èº¸´Ù 낮을 뿐이 아니라, 높은 ´Ü°èÀÇ 여러 가지 ´Ü°è¿¡¼ 누릴 수 있다. 생명은 넓고 포괄적인 용어이나, 여기서 우리의 주님께서 사용하신 생명은 신의 본성에 속하는 가장 높은 형태의 생명인 불멸에 관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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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은 상이다. 그것을 위해서 달리라고 주님께서 우리를 초청 하셨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그것을 우리자신 속에서 실감할 뿐이 아니라, 낮은 동물과 식물 속에서까지도 그들의 작용을 보며, 더 높은 형태인 천사와 신의 속에 생명의 실재를 알게 되었다. 어떻게 우리가 그렇게 포괄적인 용어의 뜻을 밝힐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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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든 것 속에 있는 생명의 비밀의 원천을 발견할 수 없다 해도, 신의 존재인 여호와가 모든 생명의 대 원천이며, 그에게서 이 모든 샘들이 공급된다는 것을 우리는 안전하게 추정할 수 있다. 모든 생물들은 그에게서 유래되며 생명을 위해서 그에게 의존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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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명은 하나님 속에
있는 것이나 피조물에
있는 것이나 다 같다. 그것은
한 활기를 돋우는
본질이고 물질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내재하는
본질이며, 피조물
속에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어떤 원인에서
유래한다. 그러므로
그는 생명의
원인이시거나, 창조자이시거나
원천이시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상상하듯이 피조물은 아무 점에서나 창조자의 본질이나 본성의 한 부분이나 자손이 아니라, 생명이 불어넣어진 하나님의 수공품이다. 신의 본성 신의 본성에서만 생명이 독립적이고, 무제한하고, 무진장하고, 언제나 연속적이며, 환경으로 생산되거나 지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므로, 당연히 여호와께서 그의 피조물의 생계를 위해서 그가 명하신 자연 법칙과 양식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오직 신의 본성에만 관계되는 이 특성이 불멸이라는 용어로 묘사되어 있다.전 장에서 보여준 것 같이 불멸은 사망의 면제를 의미하며, 따라서 병과 고통의 면제를 의미한다. 불멸은 신성과 동어로 사용할 수 있다. 마치 태양에서 지구가 빛과 활력을 받는 것 같이, 신의 불멸 원천에서 모든 생명, 축복, 각양 좋은 은사, 및 온전한 선물이 나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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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은
지구에 빛을 주는 대
원천이다. 모든
것을 조명하여 햇빛이
비추는 물체의 본질에
따라서 빛의 색과
색조의 많은 다양성을
나게 한다. 금강석, 벽돌
그리고 여러 가지
종류의 유리에 비추는
그 같은 햇빛은
현저하게 다른 결과를
낳게 한다. 빛은
같으나, 그
빛이 비추는 물체들은
빛을 받아드리고
투과하는 능력에
있어서 다르다.
생명과도 그렇다. 생명은 모두 하나의 무진장한 원천에서 흘러나온다. 굴(oyster)은 생명을 가지고 있으나, 벽돌이 많은 햇빛을 반사 할 수 없듯이, 굴의 유기체의 본질은 많은 생명을 이용할 수 없게 되어있다. 생명의 더 높은 현시의 각각인 짐승, 물고기와 조류 가운데서도 그와 같다. 햇빛 아래 여러 가지 종류의 유리같이, 이 여러 가지 피조물은 그들의 유기체에 생명을 불어넣을 때 그들이 소유하는 유기체의 활력을 다르게 나타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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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본성과
인간 광택 있는 금강석은 빛을 잘 적응하기 때문에 그것이 마치 그 자체 내부에 빛을 소유하고 있는 것 같으며, 그 자체가 마치 소규모의 태양처럼 보인다. "천사보다 조금만 낮게" 만들어진 하나님의 걸작 중에 하나인 사람도 그렇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방법을 사용함으로서 생명을 받아드리고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웅대하게 창조되었고, 결코 희미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담은 타락하기 전에 어떤 다른 지상의 피조물보다 더 웅대하였다. 이것은 심은 생명력에 있어서 어떤 차가 있어서가 아니라, 더 웅대한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강석은 햇빛이 비치는 때를 제외하고는 빛을 반사할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은 생명의 공급이 계속될 때만 생명을 소유하고 줄길 수 있다는 것을 상기합시다. 인간은 고유의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가 생명의 원천이 아닌 것은 금강석이 빛의 원천이 아닌 것과 같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자신 속에 무진장한 생명의 공급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다시 말해서 우리는 불멸의 존재가 아니라는 가장 강한 증거들 중에 하나는 죄가 들어간 이래 죽음이 우리 모든 인류에게 전했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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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에덴에서
생명을 지탱하는
나무들에 접근할 수
있게 준비하시고, 지으신
사람을 두신 그
낙원은 먹기에 좋고
보기에도 탐스러운 "모든
(종류의)
나무"가
풍부하게 공급될 것을
준비하셨다. (창
2:9,16,17)
먹기에 좋은 생명 나무들 중에 한 나무는 금지하셨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을 일시 금지하셨지만, 생명을 완전하게 지탱하는 나무들의 열매를 마음대로 먹게 그를 허락하셨다. 그리고 그는 범죄 후에만 그 나무들과 분리되었다. 그래서 그 관계로 죽음의 처벌이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