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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님의 재림,
천년
왕국 이전에 개인으로
"그는 여러분을
위하여 임명된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전에 거룩한
예언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바
만유를 회복하실
때까지, 하늘은 참으로
그를 그 안에 모셔야
합니다." (행 3: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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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Ù½Ã ¿À½Ã°Ú´Ù°í ¾à¼Ó Çϼ̴°¡? |
우리
주께서 어떤 목적을
위해서, 어느
방법으로 언젠가 그가
다시 오시리라는 것을
그의 제자들이 이해할
것을 의도하신 것은, 우리가
추정하기로는, 성서에 익숙한
사람은 누구나
인정하고 믿고 있다. 실로
예수께서
"보십시오!
나는
사물의 제도의
종결까지 여러분과
항상 함께 있습니다." (마 28:20)라고
말씀하시고, 그는
그의 영과 그의
말씀으로 그의
성도들을 안내하시고, 지도하시고,
위로하시고
떠받치시며 그들의
모든 고통가운데서
그들을 격려하시면서
계속해서 교회와 같이
계시었다.
그러나 교회가
모든 교회의 경로를
예수께서 알고 계시고, 그가
항구적으로
권고하시고
사랑하신다는 것을
다행히 의식을
하였지만, 아직도
교회는 그가 약속하신
개인의 재림을
열망한다. "내가
가면, 내가
다시 올 것이다."
(요 14:3)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확실히 개인의 재림을
언급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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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¾Æ´Ï¾ú´Ù.
|
어떤
사람은 예수께서
오순절에 성령이
내려오는 것을
언급하신 것으로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은
예루살렘의 파괴 등을
언급하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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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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ÀÖÁö ¾ÊÀ» °ÍÀÌ´Ù. 
ºÒ±³ |
꽤
많은 수가 생각하기를, 죄인들이
하나님께로 전향할 때
그것이 예수의 재림의
한 부분을 형성한다고
하며, 그래서
모든 세상이
하나님께로 전향할
때까지 그는 계속
오실 것이라고 한다. 그
다음에, 예수께서
완전히 오시게 될
것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이들은
분명히 그들의 기대에
반대를 선언하는
주제에 관한 성서의
다음 증언들을 잊고
있다:
(1) 우리 주님이
재림하실 때, 이 세상은
전혀 하나님께로
전향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
(2)
"마지막
날에 대처하기 어려운
위험한 때가 올
것입니다.....
인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쾌락을 사랑" 한다는 것. (딛후 3:1-4)
(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사람들은 더욱더
악해져서 그릇
인도하기도 하고 그릇
인도되기도 할 것"이라는
것. (13절) 그들은
적은 무리에게 주신
주님의 특별한 경고를
잊고 있다.
"그러나
여러분의 마음이 과식,
과음과
생활의 염려로 짓눌려,
갑자기
그 날이 덫과 같이
순식간에 여러분에게
닥치는 일이 없도록
여러분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그것은 온
지상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닥칠
것입니다." (눅 21:34,35)
±×¹Û¿¡, ±×µéÀÌ ±×°¡
À縲ÇϽô °ÍÀ» º¼ ¶§, ¡°¶¥ÀÇ ¸ðµç
ºÎÁ·ÀÌ ±× ¶§¹®¿¡ ºñź¿¡ Àá°Ü °¡½¿À» Ä¥ °ÍÀÔ´Ï´Ù."(°è 1:7)¶ó°í ÇϽÅ
¸»¾¸¿¡, ÁËÀεéÀÌ
ÀüÇâµÇ´Â °Í¿¡´Â ¾Æ¹«·± ¾ð±ÞÀÌ ¾ø´Ù´Â °ÍÀ» ¿ì¸®´Â
È®½ÅÇÒ ¼ö ÀÖ´Ù. ÁËÀεéÀÌ Çϳª´Ô²²·Î ÀüÇâµÇ´Â °Í
¶§¹®¿¡ ¸ðµç »ç¶÷ÀÌ ¾Ö°îÇϴ°¡?
이에
반하여 거의 모두가
인정하듯이, 만일
위의 구절이 지상에
그리스도의 임재를
언급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도리어 다음 사실을
가르친다. 만일
모든 사람이
전향되었다면, 그들이
반드시 그리스도의
출현을 반길 것이지만, 지상의
모든 사람이 그의
출현을 반기지 않을
것이라는 것 |
|
어떤
사람은 주님의 육체적
재림과 임재를
예기하나, 현재의
상태 (육신상태)에
있는 교회의 노력을
통하여 세상이
하나님께로
전향되어야 하고,
이렇게 천년시대가
소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재림
시일을 멀리 정한다.
그들은
주장하기를, 세상이
하나님께로 전향되고, 사탄이
결박되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하게 되며, 나라들이
다시는 전쟁을 하지
않을 그 때 현재의
상태 (육신상태)에
있는 교회의 일이
끝날 것이며, 교회가
이 중대하고 어려운
임무를 성취할 때, 주님이
지상의 용건들의
결말을 짓고 신자들을
보답하시고, 죄인들을
정죄 하시기 위하여
오실 것이라고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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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성경 구절들은 제각기
따로 취하면 이
견해를 지지하는 듯하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과 계획을
전체로서 고찰할 때, 이
모두가 정반대의
견해를 지지하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즉
그리스도는 세상이
하나님께로 전향되기
전에 오시며, 그
전향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통치하신다는 것과
교회는 지금 시험을
받고 있는 중이라는
것과 이기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상은 영광을
받은 후, 그
통치에 주님과 함께
참여한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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ÅëÄ¡´Â ¼¼»óÀ» ÃູÇϰí, Çϳª´ÔÀ» ¾Æ´Â
Áö½ÄÀÌ ¸ðµç ÇÇÁ¶¹°¿¡°Ô ¹ÌÄ¡°Ô ÇÏ´Â Çϳª´ÔÀÇ ÁöÁ¤µÈ
¼ö´ÜÀÌ´Ù. ÁÖ´ÔÀÇ Æ¯º°ÇÑ
¾à¼ÓÀº ÀÌ¿Í °°´Ù. ¡°À̱â´Â »ç¶÷Àº
³ª¿Í ÇÔ²² ³» ¿ÕÁ¿¡ ¾É°Ô ÇϰڴÙ."(°è 3:21) ¡°±×µéÀº »ì¾Æ³ª¼
±×¸®½ºµµ¿Í ÇÔ²² õ³âµ¿¾È ¿ÕÀ¸·Î ÅëÄ¡ÇÏ¿´´Ù."(°è 20:4)
|
|
¼¼»ó¿¡¼ Áõ¾ðÇÏ´Â
°ÍÀº ¼¼»óÀÇ ÀüÇâÀ» ÀǹÌÇÏÁö ¾Ê´Â´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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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천년시대 후까지
오시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신뢰하는 두 본문이
있는데, 여기서
우리는 그 두 가지
본문에 주의를
환기하려고 한다. 첫째
본문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도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이다. (마
24:14)
그들은
이것을 복음시대의
종말 전에 세상이
하나남께 전향함에
관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세상에다 증언하는
것은 세상의 전향함을
함축하지 않는다. 이
본문은 세상이 이
증언을 어떻게
받아드리는가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이
없다. 이
증언은 이미 나갔다.
1861
년에 성서협회의
보고서들은
보여주기를, 지상
수백만의 모두가
복음을 받아드리지
않았지만 그것이 지상
모든 언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아니다. 이제까지
현존하는 16억
인구 중 그 절반도
예수의 이름을 들어
본적이 없다. 그러나
본문의 조항은
성취되었다. 곧
복음(좋은
소식)이
증언으로서 온 세상에
모든 민족에게
전도되었다.
|
|
ÇöÀç½Ã´ë¿¡ º¹À½ÀÇ
ÁÖ¿ä¸ñÀûÀº ¹«¾ùÀΰ¡?
|
사도
야고보 (행
15:14)
는 현재시대에 복음의
주요목적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
그에게 결합되고, 그의
이름을 받게될
이겨내는 교회 곧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한 "백성을
취하시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시대에 세상을 위하여
증언하는 것은 둘째의
목적이다. |

¡°[Çϳª´ÔÀÇ]
¿À¸¥Æí¿¡¡±¶ó´Â ¸»¾¸Àº-
ÀÚ¸®°¡ ¾Æ´Ï¶ó ±Ç¼¼¿Í ±Ç´ÉÀ» ¶æÇ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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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es II |
µÑ°
º»¹®Àº ¡°³»°¡ ³× ÀûµéÀ»
³× ¹ßÆÇÀ¸·Î ³õÀ» ¶§±îÁö ³» ¿À¸¥Æí¿¡ ¾É¾Æ ÀÖ¾î¶ó"(½Ã 110:1) ÀÌ º»¹®¿¡
°üÇÏ¿©, ¸ðÈ£Çϰí
ºÒ¸íÈ®ÇÑ °ü³äÀº ±×¸®½ºµµ°¡ Çϴþîµð¿¡ ¹°ÁúÀû º¸Á¿¡
¾É¾Æ¼, ±³È¸¸¦ ÅëÇØ¼
¸¸¹°À» ±×¿¡°Ô ¼øÁ¾ÄÉ ÇÏ´Â ÀÏÀÌ ¼ºÃëµÉ ¶§±îÁö °è½Ã´Ù°¡, ±× ´ÙÀ½¿¡ ±×°¡
ÅëÄ¡ÇÏ·Á°í ¿À½Ã´Â °Íó·³ º¸ÀδÙ. À̰ÍÀº ±×¸©µÈ
»ý°¢ÀÌ´Ù.
ÂüÁ¶µÈ
Çϳª´ÔÀÇ º¸Á´ ¹°ÁúÀûÀÎ °ÍÀÌ ¾Æ´Ï°í ±×ÀÇ ÃÖ°íÀÇ
±Ç¼¼¿Í ÅëÄ¡ÀÚÀÇ À§Ä¡¸¦ Áö½ÃÇÑ´Ù. ±×¸®°í ÁÖ ¿¹¼ö²²¼´Â ±× ÅëÄ¡ÀÚÀÇ
ÁöÀ§¸¦ °øÀ¯Çϵµ·Ï ³ô¿©Áö¼Ì´Ù. ¹Ù¿ïÀÌ
¼±¾ðÇϱ⸦, ¡°Çϳª´Ô²²¼ ±×
ºÐ(¿¹¼ö)À» Ź¿ùÇÑ
À§Ä¡·Î ³ôÀ̽þî, Ä£ÀýÇϽðԵµ
±×¿¡°Ô ´Ù¸¥ ¸ðµç À̸§º¸´Ù ¶Ù¾î³ À̸§À» Áּ̽À´Ï´Ù. "(ºô 2:9) Çϳª´ÔÀº ±×¿¡°Ô
¾Æ¹öÁö¸¦ Á¦¿ÜÇϰí
¸ðµç ±Ç¼¼ À§¿¡ ¶Ù¾î³ ±Ç¼¼¸¦ Á̴ּÙ.
¸¸ÀÏ
±×¸®½ºµµ°¡ ±×ÀÇ ¿ø¼öµéÀ» ±×ÀÇ ¹ßµî»ó ¸¸µé ¶§(¸ðµÎ ¼øÁ¾ÄÉ ÇÒ ¶§)±îÁö ¹°ÁúÀûÀÎ º¸Á¿¡ ¾É¾Æ °è½Ã¸é, ´ç¿¬È÷ ¸¸¹°ÀÌ Á¤º¹ µÉ ¶§±îÁö ±×°¡
¿À½Ç ¼ö ¾ø´Ù. ±×·¯³ª ÀÌ
º»¹®¿¡¼ ¡°¿À¸¥ ¼Õ‚Àº °íÁ¤µÈ
À§Ä¡¿Í º¥Ä¡°¡ ¾Æ´Ï¶ó, ¿ì¸®°¡ ÁÖÀåÇÏ´Â
¹Ù¿Í °°ÀÌ ±Ç´É, ±Ç¼¼, ÅëÄ¡ÀÚÀÇ À§Ä¡¸¦
Áö½ÃÇÑ´Ù. ±× ¸»Àº °ËÅä
Áß¿¡ ÀÖ´Â º»¹®ÀÌ ±×¸®½ºµµ¿¡°Ô ºÎ¿©µÈ ±Ç´ÉÀÇ ÈûÀ¸·Î ¡°¸ðµç °ÍÀ» ±×
Àڽſ¡°Ô º¹Á¾½Ã۱â "(ºô 3:21)À§ÇÏ¿© ±×°¡
¿À½Å´Ù°í °¡¸£Ä¡´Â ´Ù¸¥ ±¸Àý°ú °áÄÚ ºÒÀÏÄ¡ÇÏÁö ¾ÊÀ»
°ÍÀ̶ó´Â °á·ÐÀÌ µÈ´Ù.
예를 들면, 윌리암 (William) 황제가
독일 왕좌에 앉아
있다고 우리가
말한다고 해서 왕의
벤치를 지시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상
그는 좀처럼 벤치를
차지하지 않는다. 그가
왕좌에 있다고 하는
말은 그가 독일을
통치한다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편은
최고의 위치, 최고의
통치자 다음, 탁월하거나
호의적인 위치를
의미한다.
이렇게
독일황제가 왕자
비스마르크(Bismark) 를
높였다. 곧
권세의 우편에 앉혔다. 그리고
이집트 왕국에서, 요셉(Joseph)을
파라오 (Pharaoh)의
우편에 앉혔다. 글자
그대로가 아니고
재래의 비유적
표현이다. 예수님께서
가야바(Caiaphas) 에게
하신 말씀은 이
사고와 일치한다.
¡° ÀÌÁ¦ºÎÅÍ
¿©·¯ºÐÀº »ç¶÷ÀÇ ¾ÆµéÀÌ ±Ç´ÉÀÇ ¿À¸¥Æí¿¡ ¾É¾Æ ÀÖ´Â
°Í°ú ÇÏ´Ã ±¸¸§À» Ÿ°í ¿À´Â °ÍÀ» º¼ °ÍÀÔ´Ï´Ù."(¸¶
26:64) ¿À½Ç
¶§ ±×´Â ¿ìÆí¿¡ °è½Ç °ÍÀ̸ç, õ³â½Ã´ë¿Í
±× ÈÄ ¿µ¿øÈ÷ °è¼Ó ¿ìÆí¿¡ ³²¾Æ°è½Ç °ÍÀÌ´Ù. |
|
(¿¹¼öÀÇ)
ù
°¸²Àº
Àηù¸¦
´ë¼ÓÇϽÉÀÌ´Ù. 
(¿¹¼öÀÇ)
À縲Àº ȸº¹ÇϽÉÀÌ´Ù. |
재림의
첫 강림과의 관계
하나님의
나타난 계획들의 더
깊은 연구는 첫
강림과 재림의 목적의
더 넓은 견해를 줄
것이다. 그리고 두
사건은 한 계획의
부분으로서 서로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첫
강림 때의 특수한
일은 인간을 구속하는
것이고, 재림
때의 특수한 일은
만유를 회복하고
구속된 자들을
축복하고 해방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을
위해서 자기를
속죄물로 주셨으므로 (딛전 2:6) 우리
구세주는 그 제물을 아버지께
바치시기 위하여
승천하셨다. 이렇게
인간의 죄를 위해
화해시킨다. 현재
사악한 세상 (갈 1:4)의
영향을 극복해야 하며, 그러한
명예를 얻기에
합당하다고 간주되는 "신부, 어린양의
아내"(계 21:9)의
선택 이후까지, 그는
이 세상의 통치자?(요 12:31)가
사악한 통치를
계속하는 것을
묵인하시며
기다리신다.
그
때에는 그의 희생으로
그들에게 보장된 큰
축복을 세상
사람들에게 베푸시는
일을 시작하기로
되어있으며, 그는 땅의
모든 가족을
축복하시기 위해서
오실 것이다.
|
|
실로, 구속자가
속죄물 값을 치르셨을
때, 만유를
회복하고, 축복하는
일을 즉시 시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메시아의 임하심은
한가지 사건(첫
강림) 뿐이고, 최초에
그의 사도들이
기대하였듯이 (행 1:6) 통치와
축복의 일을 즉시
시작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그리스도
교회)를
위하여 더 나은 것을"예비하셨다.(히 11:40)
그러므로
우리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통치는 19세기동안
그 머리의 고난에서
분리되었다. |
|
ù
°¸²°ú À縲
»çÀÌ´Â ±³È¸ÀÇ ¼ºÀåÀ» À§ÇÑ °¡°£ÀÌ´Ù. 
±³È¸ÀÇ ¼±Åà |
온
인류를 위하여
속죄물로 주심과 온
인류에게 주실 축복
사이인 첫 강림과
재림사이의 기간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시험하고
선택하기 위한
기간이다. 그렇지
않다면 주님의 재림은
없고 첫 강림만
있었을 것이며, 천년시대에
두 번째 임재 기간에
성취할 일이 예수님
부활에 잇따라
일어났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재림
때의 일이 첫 강림
때의 일을 즉시
잇따라 일어났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대신, 그보다는
이렇게 말하자- 만일
여호와께서 "적은
무리"
("그리스도의
몸")를
선택하는 것을
의도하시지
않으셨다면 첫 강림은
과거에 일어나지 않고
재림 때 일어났을
것이며, 강림이
오직 하나만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일곱 째
천년동안에 만유를
정결케 함과 회복하게
함이 성취될 것뿐이
아니라, 6천년동안
사악의 묵인을 분명히
계획하셨기 때문이다.
|
|
ÃູÀ» º£Çª½Ã´Âµ¥
¸í¹éÇÑ Áö¿¬ÀÇ ÀÌÀ¯
|
이렇게
죄인들을 위한 희생과
속죄물로서
예수님께서 오심은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 상속 자"
(롬
8:17)인
"적은
무리"의
선택을 고려하여,
축복과
만유를 회복하시는
시기보다 충분히 오래
앞당겨 일어난 것을
깨닫게 됐다.
이것이
속죄물 속에 약속되고
준비된 축복을
베푸시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역할에 명백한 지연의
이유를 밝혀줄
것이다. 영광스러운
목적을 위하여 그 대가가
인간이 기대했을 것
보다 훨씬 이전에
미리 준비되었지만
축복은 최초에 계획된
대로 ¶§¸¦
¸ÂÃß¾î 올
것이다.
|
|
±³È¸ »ç¸íÀº Áõ°Å
ÇÏ´Â °ÍÀÌ´Ù. 
Çϳª´Ô²²¼´Â
¼¼»óÀÇ ÀüÇüÀ» ¾ÆÁ÷ ½ÃµµÁ¶Â÷µµ ÇϽÃÁö ¾ÊÀ¸¼Ì´Ù. |
교회의
선택과 세상의 전향
예수님의
승천에서 시작하여
만유를 회복하는
시기의 초인 천년시대
초까지, 그
사이에 낀 전
기간동안, 예수님은
지상에 계시지 않고
하늘에 계신다고 사도
베드로는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만유가 회복될
때까지, 하늘은 그를
그 안에 모셔야
합니다."
(행 3:21)
성경말씀이
우리 주님의 재림의
목적은 만유의
회복이라는 것과 그가
나타날 때, 이방인들은
격분하고 (계 11:18) 대항상태에
있을 정도로
하나님께로 전혀
전향되어있지 않다는
것을 가르치므로, 다음 둘 중에
하나를 인정해야 한다:
(1) 교회가
교회 사명을
성취하는데
실패하고, 하나님의
계획이 이제까지는
좌절될 것이라거나,
(2)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주장하고 제시한
것같이, 현재
시대에 세상을
하나님께로
전향하게 하는 것을
기대할 수 없으나, 교회
사명은 좋은 소식(복음)을 온
세상에 증거 하기
위하여 전파하고(마 24:14) 교회의
위대한 미래의
사명을 위해서 신의
지도 아래 교인
자신들을 준비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만민을 전향하게
하시는 그의 권능을
아직 결코 고갈하시지
않으셨다. 아니, 그보다
더하시다. 그는
세상의 전향을 아직
시도조차도 하시지
않으셨다. |
|
¸ðµç ³²ÀÚ,
¿©ÀÚ ¾ÆÀ̸¦ À§ÇÑ ¹Ì·¡ÀÇ È¸º¹... 

|
이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이상한 진술 같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만일
하나님께서 그러한
일을 시도 하셨다면, 그는
현저히 실패하셨다는
것을 반영하기 바란다. 왜냐하면
우리가 보아온 바와
같이, 지상
수억의 사람들 중에
소수만이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이
하늘 아래 없는
유일한 이름을 (행
4:12) 지적으로
들어 본적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지 몇 개의
지도적인 종파들인
침례교, 장로교, 등의
견해와 가르침을
강력히 진술했다. 즉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적은
무리"
곧
교회를 선택하시고
계시다는 것. 그들은
하나님께서 단지
교회만을 선택하실
뿐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신의 계획 가운데
한 걸음 더 나아간
단계인 교회 선택이
끝나고 영광을 받을
때, 택함
받은 교회를 통해서
성취 될 세상을 위한 만유의
회복을
가르치는 성서를
발견한다.
이
복음시대의 "적은
무리"인
이긴 자들은 그들
안에서나 그들 때문에
땅의 모든 가족이
복을 얻게 되는 "그
씨"의
단지 몸이다 (머리는
제외됨).
|

|
여호와께서
6천년동안
세상을 하나님께로
전향하려고
노력하셨는데 항상
실패하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견해를 성경의
보증 곧 하나님의
모든 목적은 성취되며, 그의
말씀은 헛되이 그에게
돌아가지 아니하고
그가 하라고 보낸
일에서 성공할 것임 (사
55:11)과 일치하기 어렵다는
것을 발견함에
틀림없다.
세상이
아직 하나님께로
전향하지 않았다는
것과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하지 않다는
사실은 이 말씀이 그
사명을 띠고
보내어지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

¡°Áø¸®ÀÇ ¸»¾¸À»
¿Ç°Ô ºÐº°¡± (µóÈÄ
2:15)
µÎ °¡Áö ¹æÇâÀÇ
»ç°í°¡ ±âµ¶±³ÀεéÀ» ºÐÇÒÇÑ´Ù. |
택하심과
값없이 주시는 은혜
그럼
우리는 수세기 동안
기독교인들을 분할한
두 가지 방향의 사고, 즉
택하심과 값없이
주시는 은혜를
우리에게 생각나게
한다.
이 두 교리는
명백한 반대임에도
불구하고,
성서의 지지를
갖고 있다는 것을 어느
성경 연구자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든
두 가지가 다
진실임에 틀림없으나,
하늘의 율법과
질서를 관찰하고,
이 제목에 대해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지 않고는(딛후 2:15)
이 둘이 결코
일치할 수 없다는
것을 추측하도록 이
사실은 우리를 즉시
인도해야 할 것이다.
이 질서는
주시해본다면, 시대에
관한 계획 가운데
묘사된 대로, 택하심은
현재와 과거를 통하여
계속하고 있지만, 구별
방법으로 명시된
값없이 주시는 은혜는
천년시대를 통하여
대체로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예비라는 것을
우리에게 명백히
보여줄 것이다.
만일
바로 이전 장에서
개관한 시대들과
경륜들의 독특한
특징이 마음속에 새겨
있고, 택하심과
값없이 주시는 은혜에
관계되는 모든
성경구절들을
찾아내고 검토한다면, 택하심을
다루는 모든
성경구절들은 현재와
과거시대에 응용되고, 값없이
주시는 은혜를 다루는
성경구절들은 완전히
다음 시대에 적용되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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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ª¾øÀÌ Áֽô ÀºÇý |
그러나
성경에서 가르치는바와
같이, 택하심은
임의의 강제나 보통
운명론의 옹호자들이
신봉하고 가르치는
운명론이 아니고, 그
선택 목적을 위하여
지정된 기간동안에
하나님께서
유의하시고 계신
목표에 적합함과
적응에 의거한
선택이다.
아르미니아
인들 (Arminians)이 옹호하는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교리는
이 교리의 가장
진지한 옹호자들이
이제까지 가르쳤던 것
보다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의 훨씬 장려한
전시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나 특별한 사랑은
공로 없이 얻어진다는
뜻에서 언제나 값이
없다.
그러나
인간이 죄로 타락한
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어떤
하나님의 은혜는
특수한 개인, 민족, 계급에게
제한되었다. 그런데
다음시대에는 천하
만민이 그 당시에
모두에게 알려지는
조건들에서, 그
때에 부여되는 은혜를
같이 받도록 초청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든지 원하는
사람은 생명수를 거저
마시게 될 것이다. (계
2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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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6)
|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서 대강
흝어 볼 때, 이
세상의 모든 가족들을
축복하는 자 곧 그
약속된 씨가 오는 (갈
3:29) 가계를
통하는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의 어떤
정해진 자손을
선택하시는 것을
우리는 유의한다. 전형적으로
그 나라 안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세상을 위한 위대한
일을 완수하시리라는
것을 예증하신
나라로서, 모든
민족 가운데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을 우리는 역시
유의한다.
이집트에서
그들의 구출, 그들의
가나안 땅 (Cannan), 그들의
계약, 그들의
율법, 죄를
위한 제사, 범죄의
소멸과 백성들에게
뿌리기 위한 그들의
동물 제사,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완수하기
위한 그들의 제사장은
세상 모든 인류를
깨끗하게 하기 위한 참
제사장과 참 제물의
모형이며 전형적
표상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면서."내가
땅의 모든 가족 중에서
오직 너희만을 알았다."
하셨다. (암
3:2)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 이
백성만을 알아보셨다. 그렇다. 그리고
그 후에도 그랬다.
그리스도의
직무는 그들에게
제한되었으며, 그가
제자들을 보내실 때 "이방
사람들의 길로도 가지말고
사마리아 사람의
도시로도 들어가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는
그의 제자들이 다른
민족에게 가는 것을
허락지 않으셨다. 그의
제자들이 묻기를, "주여
어째서 그렇습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왜냐하면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은 어린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다."
(마
10:5,6, 15:24)고 하셨다. 그의
모든 시간을 죽으실
때까지 그들에게
바치시고, À̽º¶ó¿¤¿¡¼ Çϳª´ÔÀÇ °ª¾ø°í dzºÎÇÑ ÀºÇý¸¦ ù ¹øÀ¸·Î ³ªÅ¸³»¼Ì´Ù. "ÀûÀýÇÑ ¶§¿¡¡± °°Àº
ÀºÇý°¡ ¼¼»ó ¸ðµç Àηù¿¡°Ô Áø½Ç·Î ÃູÀÌ µÉ °ÍÀÌ´Ù.
|
|
Çϳª´ÔÀÇ ¼±¹°Àº
¹«Á¦ÇÑÇÏ´Ù.
|
하나님의
가장 숭고한 선물인
이것은 민족이나
계급에게 제한되지
않았다.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세상을 위한 것이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은총으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 보셨기
때문이다. (히
2:9)
|
|
그리고
지금도 역시
복음시대에 어떤
종류의 택하심을 받은
자가 얻는다. 세상의
어떤 지역은 다른
지역들 보다 (값없이
듣는 모든 사람에게
오는) 복음으로
더 많은 은혜를
받았다.
세계지도를
한번 보자. 얼마나
작은 부분이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뚜렷한 정도로
교화되고 축복이
되었는지 보자. 특권과
지식을 가진 당신
자신과 오늘날
부르심을 들어 본
적이 없고, 따라서
부르심을 받지 못한
이교의 암흑에 있는
수백만 수의 사람들과
대조해 보자.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고
하나님의
상속자들이며,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
상속자들이 되기
위하여 부르심 받고
그들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확고히
이룩한 일단의 수가
찰 때, 그
다음에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단지
시작일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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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단이 선택되고, 성숙해지고, 권세의
자리로
높여지기까지는 그
씨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 "평화를
주시는 하나님, 그
분이 얼마 안 있어
사탄을 여러분의
발아래 부서뜨리실
것입니다."(롬
16:20, 창
3:15) 복음시대는
신랑이 오시는 것을
위해서 정결한 처녀, 충실한
교회를 예비케 한다. 그리고
이 시대 끝에, 교회가
"준비" 될
때(계
19:7) 신랑이
오시고, 예비한
자들은 함께
혼인잔치에 들어간다. (마
25:10)
둘
째 아담과 둘째
이브는 한 몸이 되며, 그
다음에 만유의 회복의
영광스러운 일을
시작하게 된다. 이
다음 경륜, 새
하늘과 새 땅 가운데
교회는 더 이상
정혼한 처녀가 아니고
신부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 "성령과
신부가 오시오 하고
계속 말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듣는 사람은
오시오! 하고
말하십시오. 누구든지
목마른 사람은
오십시오. 누구든지
원하는 사람은
생명수를 거저
마십시오."
(계
22:17)
|
|
복음시대는
교회의 사명을
종결하기는커녕
웅대한 미래의 일을
위한 오직 필요한
준비에 지나지 않는다. 이
약속되고 앞으로 올
축복을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면서 모든
피조물이 지금 까지
계속 함께 신음하며
함께 고통 당하고
있다. (롬
8:19,22)
그리고
단지 살고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죽은
사람들을 위한
한량없이 값없이
주시는 은혜는 앞으로
오는 시대의 축복 된
기회로서, 우리
아버지의
계획가운데
준비되어있다는 것은
축복된 사실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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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망을
품은 갇힌 자들
(슥 9:12)
어떤
사람은 재림 때
예정된 축복을 얼마간
알아볼 수 있고, 주님이
그의 죽음으로 사신
광대한 축복을
부여하시기 위하여
오신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인식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 마지막
제안을 깨닫지 못한다. 즉
부패에 감금(사망) 가운데
있는 무덤 속에 있는
사람들은 재림 때
비교적 덜 완전하게
죽은 사람들(사라 남아있을
사람들. 마 8:22, 눅 9:60 참고.)
못지않게
메시아의 영광스러운
통칭에 관심을 같은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다는 사실과
마찬가지로 확실히, 그들은
모두 예수님께서 그
자신의 귀중한 피로
사신 축복과 기회를
가져야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년시대에
무덤 속에 있지 않는
사람들뿐이 아니라, 무덤
속에 있는 그 모든
사람의 축복을
기대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에 관해서 우리가
이 제목에 대한
주님의 증언을 더욱
연구하면 충분한
증명을 발견할 것이다. 무덤 속에
있는 사람들을 "소망을 품은
갇힌 자들"(슥 9:12)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들의
해방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 때문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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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이
창조된 이후 6천년
동안 지구상에 살아온
인간의 수는 1천
4백
30억
가량이라고 견적되고
있다. 이들
중, 하나님의
성도의 수는 이성으로
계산할 수 있는 매우
광범위한 견적으로 10억보다
적을 것이다. 이
대강의 견적은 "사람들
가운데 주신 이름들
중에 우리가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이
하늘 아래 없는" 유일한
이름
(행
4:12)에
믿음과 소망이 없이
죽음으로 떨어진
사람들의 수, 1천
4백
20억
(142,000,000,000)의 막대한 총계를
남길 것이다.
참으로, 이들
중의 막대한 대다수가
예수님을 전혀 알거나
들어 본적이 없었으며, 그들이
들어 본적이 없는 그를
믿을 수 없었다.
우리
물어봅시다. 숫자가
전혀 부적당한 관념을
주는 이 방대한 무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의 사정이
어떠며 어떻게 될
것일까?
그들의 사정과
상황들을 미리
아셨음에 틀림이
없으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서 아무런
예비를 하시지
않으셨을까?
아니 그의
자녀들이 주장하듯이, 많은 희망
없는 영원한 고통을
주기 위하여 그가
세상의 기초가 놓인
때부터 비참하고
무자비한 예비를
하셨는가?
아니
그가 그들을 위해서
아직 그의 계획의
높이와 깊이와 길이와
넓이 가운데 그
유일한 이름을 모두가
알게 되고, 조건들에게
순종하게 되어 영생을
즐기는 기회를
준비하고 계신가?
|
|
¹«½Å·ÐÀÚ
Ä®ºóÁÖÀÇÀÚ
¾Æ¸£¹Ì´Ï¾ÈÁÖÀÇ |
각
사려있는 교인들마다
그 자신에게 질문하며, 진실하고
여호와의 성품과
조화를 이루는 답변을
알려고 갈망하는 이런
질문들의 여러 가지
응답들이 있다.
무신론자
(Atheism)의
응답- 그들은
영원히 죽어있다. 금후란
말이 없다. 그들은
결코 다시 살지 않을
것이다.
칼빈 (Calvinism)
주의자의 응답- 그들은
구원을 받도록
택하심을 받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그들은 잃어버리도록 (지옥에
가도록) 운명을
미리 정하셨다. 그래서
소망이 없이, 언제나
¸Ó¹«¸¦ 곳에서 고통을
당하는 가운데서
몸부림치면서 그들이
지금 거기에 있다.
¾Æ¸£¹Ì´Ï¾È(Arminianism) ÁÖÀÇÀÇ ÀÀ´ä- Çϳª´Ô²²¼
¹«ÁöÇÔÀ» ÂüÀÛÇÏ¿© ±×µéÀÇ ¸¹Àº ¼ö¸¦ ¿ë¼ÇϽŴٰí
¿ì¸®´Â ¹Ï´Â´Ù. ±×µéÀÌ ¾Æ´Â ÇÑ ÃÖ¼±À» ´Ù
ÇÑ»ç¶÷µéÀº ±×µéÀÌ ¿¹¼ö´Ô ¸»¾¸À» µé¾î º» ÀûÀÌ
¾øÀ»Áö¶óµµ È®½ÇÈ÷ ¡°Ã³À½ ³ÀÚµéÀÇ
±³È¸‚(È÷ 12:23)ÀÇ ÇÑ ºÎºÐÀÌ µÉ
°ÍÀ̶ó°í ÇÑ´Ù.
|
|
±×¸®½ºµµ°¡
±¸¿øÀÇ À¯ÀÏÇÑ ±Ù°ÅÀÌ´Ù
º£µå·ÎÀÇ ¹ÏÀ½ |
이
마지막 견해에, 모든
기독교의 교파들의
대부분이 (어떤
교리들은 그와
반대임에도 불구하고) 동의하고
있다. 그
동기는 어떤 다른
견해는 하나님 편의
공정과 화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느낌에서이다.
그러나
성서에서 이 마지막
견해를 지지하고 있는가? 무지함이
구원의 근거라고
성서에서 가르치는가? 아니다. 성서에서
언급한
구원의 오직 근거는
우리의 구속자이시고
주님이신 그리스도의
믿음이다.
"참으로, 이
은혜로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받았습니다."
(엡
2:8)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음이
전 기독교 제도의
근원적인 원칙이다.
" 내가
무엇을 해야 구원을
받겠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사도들이
응답하기를, "주
예수를 믿으십시오"라고
했다.(행
16:30,31)
" 사람들
가운데 주신 이름들
중에 우리가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이
하늘 아래 없다."
(행
4:12)
"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롬
10:13)
|

À̹æÀε鿡°Ô
ÀüÇØÁø º¹À½
¹«ÁöÇÔÀÌ Àΰ£À»
±¸¿øÇÒ±î?
À²¹ýÀÌ
À̽º¶ó¿¤¿¡°Ô »ý¸íÀ» °¡Á®¿ÀÁö ¸øÇß´Ù. |
그러나
바울은 사람이 믿을
수 있기 전에 복음(좋은
소식)을
들어야 한다고
추론한다. 말하기를, "하지만, 믿음을
둔 일이 없는 분을
어떻게 부르겠습니까? 또한
들어 본 일이 없는
분에게 어떻게 마음을
두겠습니까?"
(롬
10:14)
어떤
사람은 주장하기를, 바울이"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롬
2:14)라고
말할 때, 무지함이
사람을 구원할
것이라고 가르친다고
한다.
이에서
그들은 그들의 양심이
공급하는 율법이
그들이 의롭다고
인정하는데
충분하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은
바울의 말을 잘못 ÀÌÇØÇϰí
ÀÖ´Ù. ¡°바울의
논지는 온 세상이
하나님 앞에 유죄하며"
(롬
3:19) 기록된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은 정죄
되었다고 한다 양심의
빛으로 의롭다고
인정되지 않았다.
그
양심의 빛이 그들을
용서했거나
비난했거나 이 사실은
마치 기록된 율법이
있는 유대인들이 그
율법으로 정죄 되었든
바와 마찬가지로
그들이 온전함에 못
미쳤으며, 삶을
얻기에 부족하였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
3:20)는 이유 때문이다.
유대인들에게
준 율법은 그들의
약함을 드러내고, 그들이
하나님 앞에 그
자신들이 의롭다고
인정될 수 없다는 것을
유대인에게 보여줄
목적이었다. 그것은
"율법의
행위로는 아무도 그(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인정되지
못할 것" 이기
때문이다. (롬
3:20)
기록된
율법은 유대인들을
정죄하였으며
이방인들은 그들을
정죄하기에 충분한
양심의 빛을 가졌다. 이렇게
생존권을 주장하지
못하게 모든 입을
막았고, 온
세상은 하나님 앞에
유죄하다.
|
|
¸¹Àº °¡µ¶±³ÀεéÀº
Çϳª´Ô²²¼ ¹«ÁöÇÑ »ç¶÷µéÀ» Á¤ÁËÇϽÃÁö ¾ÊÀ» °ÍÀ̶ó°í
Ʋ¸®°Ô ¸»ÇÑ´Ù.
|
모든
율법을 지키다가
한 가지 점에서 잘못
내디디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것 모두를
위반한 사람이 되고, 율법계약으로
약속된 어느 축복이든
주장할 수 없다는
야고보서 (2:10)의 말씀을 기억하면, 우리는
"의로운
사람은 없으니, 하나도
없다."
(롬
3:10)란
말씀을 깨닫게 된다. 단
한 분을 제외하고는, 정죄된
사람은 공적 있는
일로서는 어느 하나도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것과 무지함을
구원의 기초라고 내
세우는 것은 동등하게
무익하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성서는 사람을 구원할
각 소망의 문들을 다
닫는다. 무지함이
어느 한사람도 믿음과
순종의 보답에 자격을
줄 수 없다.
|
|
Çϳª´Ô²²¼´Â º¸´Ù
´õ ÁÁÀº ¹æ¹ýÀ¸·Î ¸ðµç »ç¶÷À» À§ÇÑ ÃູÀ» °¡Áö°í
°è½Ã´Ù.
|
만유의
회복에 관한
예언자의 증언
많은
기독교인들은
수백만의 무지한
유아들과 미개인들이
영원히 구원을 잃게 될
것(영원히 희망
없는 고통 받는 곳으로
보내진다고 그들이
배웠음)이라는
것을 믿고 싶어하지
않으면서, 이
성경 말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무지한 사람들을
정죄하시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그들의 관대한 마음과
그들이 하나님께서
선량하심을 감지하는
것에 감탄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에게 너무
성급하게 성경의
선언을 버리거나
무시하지 말 것을
강조한다. 하나님께서는
무지함을 통해서 보다
더 좋은 방법으로
모든 사람을 위한
축복을 가지고 계시다. |



¹Ì°³Àε鿡°Ô
¾î¶°ÇÑ ÀÏÀÌ ÀϾ °ÍÀΰ¡? |
그러나
이 행위들이 그들이
말한 신념과 일치하는가? 아니다. 그들은
무지한 사람들이
그들의 무지함 때문에
구원받게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공언하지만, 그들은
계속 수천의 귀중한
인명과 수백만 불의
돈을 희생할 정도로
미개인에게
전도사들을 보낸다.
만일
그 모두나 그
절반만이라도
무지함으로 구원 될
것이라면,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가르쳐주기
위하여 전도사들을
보내는 것은 그들에게
명확한 해를 끼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전도사들이 그들에게
갈 때 천 명 중에 오직
약 한 명만이 믿기
때문이다.
만일
이 관념이 옳은
것이라면, 그들을
무지함에 남아있게
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을 것이다. 그러면
훨씬 더 많은 비율이
구원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방면의 논거를
계속하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