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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의 묵인 연구 7
사악의 묵인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과의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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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악이 묵인되었나? 원칙의 옳고 그름 도덕적 감각 하나님은 사악을 묵인하셨으며, 선을 이루도록 그것을 지배 아담의 시험은 어리석은 희극이 아님 아담의 유혹은 심한 것이다 아담은 고의적으로 죄를 범했다 하나님은 사악의 창시자가 아니시다 죄의 처벌은 불의하지 않으며, 너무 엄하지도 않음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을 정죄 하시는데 전시된 지혜, 사랑, 공정 하나님의 일반 율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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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악이 묵인되었나? 사악은 직접으로나 관계가 적게나 어떤 종류이든 괴로움의 원인이 되는 무엇이든, 그리고 불행을 야기하는 근본 요소이다. 웹스터(Webster) 그러므로 이 주제는 인간의 병, 슬픔, 아픔, 약점과 죽음에 관하여 질문할 뿐이 아니라, 이 모두를 더 깊이 검토하여, 이것들의 첫째 원인인 죄와 죄의 치유도 숙고하려고 한다. 죄가 사악의 원인이므로 죄의 치유가 사악을 영구히 없애는 유일한 방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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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적인 마음에 다음 질문들보다 더 종종 떠오르는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은 아마 없을 것이다: (1) 왜 하나님께서 사악이 현재 지배하도록 묵인 하셨나? (2) 왜 하나님께서 우리 첫 양친을 완벽하고 고결하게 창조하신 후, 사탄이 그들을시험하도록 묵인하셨나? (3) 왜 하나님께서 금단의 나무를 허락된 좋은 나무들 사이에 심어두시었나?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다음 질문이 떠나지 않을 것이다. (4) 하나님께서 인간 타락의 모든 가능성을 방지하실 수 없었을까? 그 어려움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일어난다. 하나님께서 죄가 들어오는 것을 방지하실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방지하시지 않으셨다는 사실은 죄의 현재 묵인이 궁극적으로 보다 더 큰 이로움이 되기 위하여 계획 되어있다는 것이 우리에게 충분히 증명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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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로서
본 하나님의 계획은
밟은 방침의 지혜를
증명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묻는다. 모든
것이 가능하신
하나님께서 사탄의
계획이 완전히 성취
못하게 알맞은 때에
간섭하실 수 없었을까?
의심할 여지없이 그리하실 수 있으셨다. 그러나 그러한 간섭은 하나님 자신의 목적들을 성취하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그의 목적은 그의 율법이 완전함과 권세와 의로운 권력이 있음을 나타내려 하시고, 율법 위반에서 유래된 사악한 결말을 인간과 천사들에게 증명하시려는 것이었다. 그밖에 바로 그들의 본성 안에는 성서가 진술하듯이 하나님에게도 불가능한 무엇이 있다.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다." (히 6:18) "½º½º·Î Àڱ⸦ ºÎÀÎÇÏ½Ç ¼ö ¾ø´Ù."(µóÈÄ 2:13) 그는 틀린 행위를 하실 수 없다. 그러므로 비록 우리의 근시적인 개념이 일시동안 무한하신 숨긴 지혜 샘들을 식별하지 못할지라도, 그의 피조물들을 영생으로 안내하시기 위하여 그는 가장 지혜롭고 최상의 계획밖에 택하시지 않을 수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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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가
선언하기를, 만물이
주의 기쁨을 위해서
창조되었다. (계
4:11) 여기서
주의 기쁨은 의심할
여지없이 그의 축복을
베푸시고 그의
영광스러운 신의
속성을 행사하시는
기쁨일 것이다. 자비하신
계획을 이루시는데
있어서 그가 사악과
악인들이 일시동안
활동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묵인하시긴
하지만, 그것은
사악을 위해서나 그가
죄와 연합하시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Ö³ÄÇÏ¸é ¡°ÁÖ´Â Á˾ÇÀ» ±â»µÇÏ´Â ½ÅÀÌ ¾Æ´Ï½Ã´Ï‚(½Ã 5:4)¶ó°í ±×°¡ ¼±¾ðÇϽñ⠶§¹®ÀÌ´Ù. ¸ðµç Àǹ̿¡¼ »ç¾ÇÀ» Àû´ëÇϽÃÁö¸¸, ±×ÀÇ ÁöÇý°¡ ±×ÀÇ ÇÇÁ¶¹°µé¿¡°Ô ¿µ±¸ÇÏ°í ±ÍÁßÇÑ ±³ÈÆÀÌ µÉ ¼ö ÀÖ´Â ±æÀ» ¾Æ½Ã±â ¶§¹®¿¡ Çϳª´Ô²²¼´Â ÀϽõ¿¾È »ç¾ÇÀ» ¹¬ÀÎÇϽŴÙ. Áï ÈѹæÇϽÃÁö ¾ÊÀ¸½Å´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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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의 옳고 그름 모든 옳은 원칙에는 대응하는 그른 원칙이 있다는 것은 자명한 진리다. 예를 들면, 참과 거짓, 사랑과 증오, 공정과 부정 같은 것이다. 우리는 이 반대되는 원칙들이 작용될 때 그것들의 결과에 따라서 옳고 그름으로 분별한다. 작용 중, 결과가 유익 되고 궁극의 질서, 조화, 행복을 낳는 원칙을 우리는 옳은 원칙이라고 부른다.그리고 불화, 불행, 파괴를 낳는 그 반대는 그른 원칙이라고 부른다. 작용하고 있는 이 두 가지 원칙의 결과를 선과 악이라고 부른다. 옳고 그른 원칙을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자발적으로 옳거나 그름으로 좌우된 지적인 존재는 옳거나 그른 것으로 지배되는 경우에 따라 덕행이 있다거나 죄 있다고 부른다. 도덕적 감각 옳고 그른 원칙을 식별하는 이 기능은 도덕적 감각이나 양심이라고 부른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이 도덕적 감각으로 하나님을 판단할 수 있고 그가 선하심을 인식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의와 공정을 증명하기 위하여 언제나 이 도덕적 감각에게 호소하신다. 그리고 아담 (Adam) 은 죄의 결과를 알기 전에도 같은 도덕적 감각으로 죄나 불의가 악이라는 것을 식별할 수 있었다.하나님의 피조물의 하류 계급은 이 도덕적 감각을 타고나지 않았다. 개는 약간의 지성을 가졌으나, 어떤 행동이 자기 주인에게서 칭찬과 상을 받게 되고, 어떤 행동이 꾸지람을 받게 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도덕적 감각의 정도는 아니다. 개가 훔치거나 죽여도 죄인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개가 재산이나 생명을 보호해도 덕행이 있다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개는 그의 행동의 도덕적 자질에 대해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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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옳고 그름을
식별하는 능력이 전혀
없거나, 오직
옳음만을 식별하고
행할 수 있게 만드실
수 있었다. 그러나
인간을 그렇게
만드신다는 것은 오직
생명 있는 기계를
만드신 것이고, 그의
창조자의 정신적
형상을 만드신 것이
확실히 아닐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가 만드셨듯이
인간을 완벽하고
자유로운 존재로
만드시고, 그가
사탄의 유혹에서
인간을 보호하실 수
있었다.
그 경우에 인간의 경험은 선으로 제한되어있기 때문에 외부에서 오는 악의 제안이나 내부에서 일어나는 야망을 계속적으로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것은 영구한 미래를 미정으로 만들었을 것이며, 불순종과 무질서의 돌발이 언제나 가능성으로 남아 있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밖에, 악과의 대조가 아니고는 선을 전혀 그렇게 높이 평가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피조물을 에덴(Eden)에서 선으로 둘러싸서, 맨 먼저 선과 익숙하게 하셨다. 그리고 그 후에 불순종에 대한 처벌로서 악에 대한 엄중한 지식을 주셨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이브를 에덴에서 추방하시고, 그와의 친교를 빼앗으시고, 그들이 악, 어리석음과 죄의 매우 죄스러움을 영원히 알게 할 수 있게 하시기 위하여 그들로 하여금 병, 고통과 죽음을 경험케 하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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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의 결과들을
비교함으로서, 아담과
이브는 선과 악의
올바른 이해와 적당한
판결을 갖게 되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보라, 사람이
선악을 아는데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창
3:22) 선악을
아는데 있어서 그들의
자손들도 같다.
오직 다른 점은 아담과 이브와 달리 그들의 자손들은 악에 대한 지식을 먼저 얻게 되고, 선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천년시대에 그들의 심판관이시며 왕이 되실 주님이 그들을 구속한 결과로 선을 경험하게 될 때까지 충분히 실감할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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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감각이나 옳고 그름의
판단, 그리고
아담이 소유했던
그것을 사용하는
자유는 하나님과
유사한 중요한
특징들이었다. 옳고
그른 율법은 아담의
천부의 성질에 쓰여
있다. 그것이
꼭 신의 본성의 한
부분인 것처럼 아담의
본성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 (창
1:26)이나
하나님을 닮음 곧 이
원래 율법이 새긴
사람의 본성이
지워지고, 죄로
타락하는 영향을
통해서 원래 사람
본성의 분명한 윤곽을
잃었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그러므로 첫 사람 속에 있던 그것이 지금 사람 속에 있지 않다.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미워할 수 있는 능력을 함축한다. 그러므로 창조자께서 사랑하고 옳음을 행할 능력을 지닌 그 자신과 유사한 사람을 만드시는데 있어서, 미워하고 그름을 행할 대응하는 능력 없이 만드실 수 없다고 우리는 추론한다. 자유로운 도덕적 도구나 자유로운 의지라고 불리는 이 선택의 자유는 사람 본래의 재질의 한 부분이다. 그리고 이 선택의 자유는 그의 모든 정신적 도덕적 능력과 더불어 그를 창조자의 형상으로 만들어 내었다. 6 천 년간의 타락 후, 오늘날 죄가 최초의 유사함을 지워버렸으므로 죄와 수반된 결과들로 보다 크거나 보다 작은 정도로 우리가 얽매어 있어 자유롭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죄가 지금 더 쉽고, 그러므로 의로움 보다 죄가 타락된 인류에게 더 마음에 들게 되어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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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사악을 묵인하셨으며, 선을 이루도록 그것을 지배 하나님께서 아담이 죄를 단념할 정도로 많은 죄의 사악한 결과들의 생생한 인상을 그에게 주실 수 있었다는 것은 우리가 새삼 물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실제로 악을 경험하는 것이 사람에게 영원히 도움이 되는 가장 틀림없고 제일 영속하는 교훈이 될 것임을 하나님께서 예견하셨다고 우리는 믿는다.그래서 그 이유로 하나님께서 사람이 악을 선택하여 악의 결과를 느끼는 것을 방지하시지 않고 묵인 하셨다. |